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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조용한 디폴트'…61개국 정부 수입 10% 이상 이자 지급 [글로벌 머니 X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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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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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러 신흥국이 실질적으로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진입하면서 외채 상환 부담이 급격히 증가했다고 전했다.
  • 볼리비아, 케냐, 에티오피아, 이집트 등 주요 신흥국의 외환보유고 급감정부 수입 대비 이자 부담 확대가 경제 안정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밝혔다.
  • 신흥국 위기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불안달러 강세 현상은 한국 수출과 자본 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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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글로벌 사우스'라 불리는 남반구 신흥국 지역에서 국가 부도와 사회적 와해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선진국의 고금리 장기화와 강달러, 누적된 부채 등이 맞물리면서 이른바 '유동성의 덫'에 걸리면서다.

'조용한 디폴트'

24일 세계은행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12월 기준 다수의 개발도상국이 공식적인 채무불이행(디폴트) 선언을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빚을 갚을 능력을 상실한 '조용한 디폴트' 상태에 진입했다.

세계은행은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개발도상국에서 채권자와 선진국으로 빠져나간 순자본 유출액(부채 상환액-신규 대출)이 7410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지난 50년 중 최대 규모다. 개발도상국들이 경제 성장을 위해 투자해야 할 자본이 선진국의 빚을 갚는 데 빨려 들어가고 있는 현상이 굳어진 것이다.

최근 신흥국의 위기는 미국 경제의 독주와 밀접하게 관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3분기 미국의 실질 GDP 성장률은 연율 4.3%를 기록했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예외주의'는 신흥국에는 악영향을 미쳤다. 미국 경기가 좋기 때문에 미국 중앙은행(Fed)가 금리를 공격적으로 내릴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결국 고금리 달러 자산을 찾아 글로벌 자금이 미국으로 쏠리면서 신흥국은 자금 조달 창구가 막히기 쉽다. 기존 부채 상환 부담만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작년 기준 저소득 및 중소득 국가의 외채 잔액은 8조 900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번 위기는 남미, 동아프리카, 북아프리카를 가리지 않고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각국의 위기 모습은 다르다. 하지만 핵심 요인은 '달러 부족'과 '부채의 덫'으로 같다.

자원 부국 볼리비아의 '몰락'

남미의 자원 부국 볼리비아는 외환보유고 고갈로 국가 기능이 마비된 대표적 사례다. 2014년 150억 달러에 달했던 외환보유고는 지난 8월 기준 약 1억 7000만 달러 수준으로 99% 급감했다. 사실상 국가 금고가 텅 빈 셈이다.

로드리고 파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지난 19일 재정 파탄을 막기 위해 20년간 유지해온 연료 보조금을 전격 폐지했다. 그 결과 하루 만에 디젤 가격은 리터당 3.72볼리비아노에서 9.80볼리비아노로 163% 폭등했다. 휘발유 가격도 86% 올랐다.

이에 격분한 운송 노조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라파스 등 주요 도시는 무정부 상태에 빠졌다. AFP 통신 인터뷰에서 볼리비아 소상공인 파울리나 탄카라 씨는 "볼리비아의 사태는 예견된 비극"이라며 "매일 1000만 달러가 밀수업자들의 배를 불리는 데 쓰이는 보조금을 유지하려다 국가 전체의 지불 능력을 태워버렸다"고 분노했다.

볼리비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지난 10월 디지털 자산(암호화폐) 거래액이 24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자국 통화를 믿지 못한 국민들이 달러 대신 비트코인이나 스테이블코인(테더 등)를 사재기하며 '화폐 망명'도 시도하고 있다.

동아프리카의 경제 허브 케냐는 금융 기법으로 디폴트를 지연시키고 있다. 하지만 속은 곪아 터지기 직전이라는 분석이다. 케냐 정부는 만기가 돌아온 유로본드를 갚기 위해 더 높은 금리의 채권을 발행하는 돌려막기를 지속하고 있다.

케냐는 세수의 67% '빚잔치'

케냐는 지난 10월 7년물과 12년물 유로본드를 발행해 15억 달러를 조달했다. 금리는 연 8.7%에 달했다. 빚을 갚기 위해 고리대금을 쓰고 있다. 현재 케냐의 부채 상환 비용은 정부 전체 세수의 약 67%를 차하고 있다. 세금 100원을 걷으면 67원을 이자 갚는 데 쓰는 셈이다. 이를 메우기 위해 지난해 빵과 식용유 등에 세금을 매기는 '금융법'을 추진하다 대규모 유혈 시위가 발생하기도 했다.

데이비드 은디 케냐 대통령 경제 자문위원장은 "케냐는 사실상 IMF의 법정 관리 상태에 있다"며 "우리는 빚을 갚기 위해 또 다른 빚을 내고 있고 이는 주권 국가로서의 재정 결정권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지속할 수 있는 금융이 아니라 폰지 사기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기후 위기라는 악재가 겹쳤다. 올해 초 발생한 대홍수로 인프라가 파괴되면서 복구 비용이 급증했다. 이는 가뜩이나 부족한 재정 여력을 더욱 갉아먹고 있다는 분석이다.

에티오피아는 국제 채무 재조정 시스템의 실패를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2023년 말 디폴트 선언 이후 민간 채권단과 협상을 벌였다. 하지만 지난 10월 결국 결렬됐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원금의 18% 탕감을 요구했다. 하지만 블랙록 등 글로벌 자산운용사들로 구성된 채권단은 "에티오피아의 수출 실적이 개선되고 있어 지불 능력이 있다"며 거부했다.

결국 에티오피아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34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GDP 대비 1.9%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이집트는 겉보기엔 위기를 넘긴 모범생처럼 보인다. 작년 초 UAE와 350억 달러 규모의 '라스 엘 히크마' 개발 계약을 체결하고, IMF 지원금을 80억 달러로 늘리며 급한 불을 껐다. 지난 10월 S&P는 이집트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는 분석이다. 이집트의 핵심 달러 파이프라인인 수에즈 운하가 홍해 사태(후티 반군 공격 등)로 사실상 막혔다. 2024~2025 회계연도 수에즈 운하 수익은 전년보다 45.5% 급감한 36억 달러에 그쳤다.

구조개혁 기회 vs 사회적 참사

일각에서는 최근 위기가 신흥국의 고질적인 포퓰리즘 정책을 수술할 기회라는 의견도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주류 경제학계는 볼리비아의 연료 보조금 폐지나 이집트의 긴축 재정이 장기적으로는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고 경제 체질을 개선할 필수 과정이라고 본다. 실제로 볼리비아 정부는 보조금 폐지로 연간 30억 달러의 재정을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편에서는 급격한 긴축이 '사회적 참사'로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UN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작년 기준 61개 개발도상국에서 이자 지출이 정부 수입의 10%를 초과했다. 교육이나 보건 예산보다 이자 갚는 데 돈을 더 많이 쓰는 나라가 교육 기준 22개국, 보건 기준 45개국으로 급증했다.

신흥국 위기는 국지적 불안에 그치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글로벌 공급망의 파편화다. 볼리비아(리튬), 콩고(코발트) 등 자원 부국의 정세 불안은 전기차 등 핵심 산업의 공급망을 위협한다.

지정학적 리스크도 확산한다. 경제난은 정치적 불안정을 야기하고, 이는 난민 문제나 테러리즘 확산으로 이어져 선진국의 안보 비용을 늘릴 수 있다. '달러 쏠림'의 심화 현상도 우려된다. 신흥국 불안은 안전자산 선호 심리를 자극해 달러 강세를 부추긴다. 이는 다시 신흥국 부채 부담을 키우는 악순환을 형성할 수 있다.

한국 경제도 악영향을 받고 있다. 국내 주요 건설사들의 해외 미수금 리스크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국토교통부와 업계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 국내 건설사의 해외 미수금은 5조 2737억 원 규모로 추산된다.

신흥국의 구매력 감소는 한국의 수출에 부정적인 요인이다. 신흥국발 금융 불안이 글로벌 안전자산 선호 현상을 강화할 경우에는 외국인 자금이 한국 주식·채권 시장에서 이탈할 가능성도 커진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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