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지나려면 스테이블코인 내놔라"…이란의 엄포 [한경 코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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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뉴스룸

간단 요약

  • 이란 혁명수비대가 호르무즈 통행 선박에 배럴당 1달러 스테이블코인 또는 위안화 통행료를 요구하며 달러는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 USDT, USDC 등 스테이블코인이 SWIFT를 거치지 않고도 이란에 달러 가치를 이전하는 수단이 되며, 미국의 글로벌 제재를 우회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 지니어스법으로 스테이블코인 준비자산이 미국 국채에 묶이면서 디지털 페트로달러가 형성됐지만, 이 구조가 이란 사례에서처럼 달러 패권의 균열을 드러내는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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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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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의 디지털 그림자

1974년 6월 8일,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파하드 왕세자가 워싱턴에서 악수했다. 석유 수출 대금을 달러로 환류하고, 그 달러를 다시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구조. 이른바 페트로달러 체제의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그 달러가 세계를 순환하는 대동맥이 바로 호르무즈해협이었다. 전 세계 석유와 LNG 물동량의 5분의 1이 이 좁은 수로를 지난다. 반세기 동안 호르무즈는 페트로달러의 심장부였다.

호르무즈를 틀어쥔 이란은 핵무기 없이도 세계 경제의 급소를 누를 수 있다. 2월 28일 트럼프 행정부가 '오퍼레이션 에픽 퓨리'를 개시하자, 이란의 카드는 예상대로 해협 봉쇄였다. 통과 물동량은 90% 넘게 급감했고, 국제유가는 전쟁 전 배럴당 63달러 수준에서 100달러를 넘어섰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실물 거래 기준 유가인 Dated Brent(브렌트유 현물가격)는 지난달 2일 141달러를 돌파하며 200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에서는 나프타 수급 차질 우려로 종량제 쓰레기봉투 사재기까지 벌어졌고, 편의점 3사의 봉투 매출은 전주 대비 200~300% 뛰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해협 봉쇄가 쓰레기봉투 대란으로 이어진 것이다.

트럼프에게도 호르무즈는 강력한 압박 카드였다. 그는 지난달 1일 대국민 연설에서 작전이 "곧 완료된다"고 말하면서도 "2~3주 안에 이란을 석기시대로 되돌려놓겠다"고 위협했다. 나가겠다는 말과 더 때리겠다는 말이 한 연설 안에 공존한 셈이다. 시장의 반응은 명확했다. 연설 직후 유가는 5% 넘게 뛰었고, 아시아 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코스피도 2.82% 밀렸다.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는 교착 상태. 미국의 전략적 딜레마가 그대로 드러난 장면이었다. 8일 오전 트럼프는 자신의 SNS를 통해 "2주간 휴전, 호르무즈 개방"을 일방적으로 선언했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교착의 한복판에서 뜻밖의 결제 수단이 등장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해협을 통과하려는 선박에 통행료 징수를 선언했다. 배럴당 1달러. 200만 배럴을 실어 나르는 초대형 유조선(VLCC)이라면 200만달러를 내야 한다. 결제 수단은 위안화 또는 스테이블코인이다. 달러는 받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받을 수 없다. 이란은 미국의 경제제재 아래 SWIFT 결제망에서 사실상 차단된 나라다. 전통적인 은행 시스템으로는 달러를 수취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스테이블코인이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꿨다. USDT나 USDC는 미국 달러에 1 대 1로 연동된 디지털 자산이다. 은행 계좌가 필요 없고, SWIFT를 거치지도 않는다. 블록체인 위에서 누구에게든 달러 가치를 이전할 수 있다.

이란은 지금 미국과 전쟁 중이다. 그런데 미국 달러에 페깅된 디지털 달러로, 은행이 아니라 블록체인 위에서 통행료를 받고 있다. 페트로달러 체제를 낳은 바로 그 해협에서, 달러의 디지털 그림자가 미국의 글로벌 제재를 우회하는 화폐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는 미국 쪽도 다르지 않다. 지니어스법(GENIUS Act) 이후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발행액 전액을 미국 국채 등 안전자산으로 보유해야 한다. 테더는 준비자산의 83%인 약 1220억달러를 미국 단기국채로 채웠고, 이는 2025년 말 기준 독일이나 이스라엘의 보유량을 웃돈다.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 민간이 운영하는 달러 머니마켓펀드처럼 기능하면서, 발행량이 늘어날수록 미국 국채에 대한 구조적 수요도 함께 커지는 셈이다. 미국이 설계한 '디지털 페트로달러'는 달러 시스템 바깥의 이용자들까지 달러 준비자산 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장치인 셈이다.

그런데 바로 그 장치를, 미국과 전쟁 중인 이란이 미국을 압박하는 전략 무기로 활용했다. 미국이 달러 패권 강화를 위해 설계한 디지털 페트로달러가, 오히려 그 달러 패권의 균열을 드러내는 도구가 된 것이다. 테더는 이미 법 집행기관과 협력해 약 33억달러어치 USDT를 동결하고 7000개가 넘는 지갑을 차단한 전력이 있다. 기술적으로 통제는 가능하다. 그러나 전쟁이 한창인 지금까지도 미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호르무즈 통행료의 스테이블코인 결제에 대해 구체적인 대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란 연계 지갑을 강하게 단속하면 스테이블코인의 개방성이라는 가치 제안이 훼손되고, 반대로 방치하면 지니어스법이 설계한 달러 패권 확장의 논리가 흔들린다. 어느 쪽이든 비용이 따르는 딜레마다.

조금 더 멀리서 보면, 이 딜레마는 더 큰 흐름의 한 장면에 불과하다. 호르무즈에서 드러난 것은 단지 이란의 전술이 아니다. 오래된 금융 질서가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도구가, 그 질서 자체를 변형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은 올해 주주서한에서 토큰화가 "금융 시스템의 배관을 바꾸고 있다"고 썼다. 달러는 여전히 가장 강한 화폐다. 그러나 달러가 흐르는 배관은 더 이상 SWIFT와 환거래 은행만이 아니다.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배관이 깔렸고, 그 배관은 동맹국도 적국도 가리지 않는다.

50년 전 호르무즈가 페트로달러의 산실이었다면, 오늘의 호르무즈는 그 체제가 진화하는 현장이다. 달러가 죽는 것이 아니다. 달러가 흐르는 방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언제나 설계자의 의도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 사진=코빗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 사진=코빗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코빗 리서치센터 설립 멤버이자 센터장이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사건과 개념을 쉽게 풀어 알리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전략 기획,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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