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해고되는 시대…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존재 이유 [한경 코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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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 요약

  • AI 기반 에이전트 경제에서 건당 수십~수백 원 규모의 초소액 결제가 증가하며 기존 카드망으로는 처리에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 이 흐름 속에서 USDC, 서클, 코인베이스, 마스터카드 등 글로벌 기업이 스테이블코인 결제 인프라나노페이먼트 구축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 국내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커피 한 잔이 아닌 통화주권과 직결된 과제로, 에이전트 경제의 소비자가 달러 대신 원화를 쓰도록 원화 레일을 서둘러 깔아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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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챗GPT
사진=챗GPT

1811년 영국 노팅엄의 방직공들은 망치를 들고 공장으로 몰려갔다. 새로 도입된 기계 편직기가 자기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름을 딴 러다이트(Luddite) 운동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부서진 기계 대신 더 많은 기계가 들어섰고, 옷은 더 많이, 더 싸게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이 운동이 예감했던 진짜 문제는 그 다음에 있었다. 기계가 옷을 짠다면, 누가 그 옷을 살 것인가.

100년 뒤 헨리 포드는 하나의 답을 내놓았다. 1914년 1월 포드자동차는 자사 노동자의 일당을 2.34달러에서 5달러로 하루아침에 두 배 넘게 올렸다. 동종 업계 평균의 갑절이었다. 이 기이한 임금 인상의 목적은 분명했다. 컨베이어벨트가 찍어내는 자동차를 살 소비자를 공장 안에서 직접 만들어내기 위해서였다. 생산의 자동화가 완성되려면 소비 역시 함께 조직돼야 한다는 점을 포드는 알고 있었다.

이제 21세기 방직공의 자리에 AI가 들어섰다. 코로나 이후 고용 불안은 해마다 되살아났고, 생성형 AI가 등장한 뒤로는 화이트칼라의 다수가 "나보다 AI가 낫다"는 감각에 시달린다. 과장된 공포만은 아니다. 기업이 결국 인간보다 AI를 택할 것이라는 현실 감각에 가깝다. 그렇다면 포드가 던졌던 질문이 다시 돌아온다. 소비자가 사라지는 시대에 경제는 어디로 가는가.

AI가 인간 노동을 대체한다고 해서 생산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효율은 더 올라갈 수 있다. 문제는 생산이 아니라 소비다. 공장은 계속 돌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돈은 누가 쓸 것인가.

답은 두 가지다. 포드처럼 해고된 노동자를 다시 소비자로 세우거나, 사라지는 인간 소비자 대신 소비를 집행할 다른 주체를 세우는 것이다. 지금의 실리콘밸리는 후자를 택한 듯하다. 포드가 100년 전 노동자를 소비자로 호명했다면, 오늘의 빅테크는 인간 대신 결제 버튼을 누를 기계를 세우고 있다. 이른바 에이전트 경제다.

이 경제에서 인간은 '뜻'만 전달한다. 주말에 부모님 댁에 꽃을 보내라, 다음 달 제주 일정에 맞는 호텔을 잡아라. 검색과 리뷰 분석, 가격 비교, 결제 집행은 모두 에이전트의 몫이 된다. 에이전트들이 서로 주고받는 수천 건의 호출은 기계 사이를 오가는 B2B 트래픽이다. 그리고 그 끝에서 사람의 계좌를 열어 꽃집에 꽃값을 보내는 것은 C2B 트래픽이다. 해고된 직장인이 구매력을 잃더라도, 그가 부리던 에이전트는 마지막 남은 잔고에서 꽃값을 꺼내 꽃집에 송금한다. 소비자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소비의 집행자가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한 번의 '뜻'을 실행하는 데는 수십, 수백 건의 작은 결제가 따라붙는다. 에이전트가 제주 여행을 설계한다고 해보자. 항공권을 예약하려면 여러 항공사의 좌석 데이터를 불러와야 한다. 숙소를 고르려면 플랫폼마다 흩어진 가격 정보를 조회해야 한다. 식당을 찾으려면 리뷰 API를 호출해야 한다. 각각이 건당 수십~수백 원짜리 정보 거래다. 인간에게는 구글 검색 한 번처럼 보이는 행위가, 에이전트 세계에서는 수십 건의 유료 호출로 쪼개진다. 이런 거래는 신용카드망 위에서는 성립하기 어렵다. 건당 수수료가 거래액보다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이 등장한 자리가 바로 여기다.

이 결제는 이미 흐르기 시작했다. 지난 3월 달러 스테이블코인 USDC 발행사인 서클(Circle)은 AI 에이전트 간 결제 데이터를 공개했다. 참여한 에이전트는 40만 개를 넘었고, 건당 평균 결제액은 0.31달러였다. 마케팅 업계의 키워드도 이미 바뀌고 있다. SEO(검색엔진 최적화)에서 AEO(답변엔진 최적화), GEO(생성엔진 최적화)로. 검색창을 두드리는 주체가 사람에서 에이전트로 옮겨가고 있다는 신호다.

결제 인프라는 그보다 더 빠르게 움직인다. 올해 초 구글은 월마트, 쇼피파이와 함께 에이전트 결제 표준 UCP(Universal Commerce Protocol)를 발표했다. 같은 시기 페이팔은 에이전트 커머스 기업을 인수했다. 3월에는 마스터카드가 스테이블코인 결제 인프라 기업 BVNK를 최대 18억달러에 사들였다. 코인베이스는 에이전트 전용 지갑인 'Agentic Wallets'를 출시했다. 서클은 1센트는 물론 그 100분의 1 단위까지 채산이 맞도록 설계된 나노페이먼트를 공개했다. 대형마트의 카트가 아니라 자판기의 동전 투입구에 가까운 결제다. 마스터카드 최고제품책임자 요른 램버트는 이 흐름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카드 사업에는 더 이상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없다." 비자와 마스터카드는 자기 사업의 10년 뒤를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물론 이것이 내일 당장 체감될 세계는 아니다. 코인베이스의 x402 결제 프로토콜은 하루 실거래액이 3만달러 남짓에 그친다. 대부분은 테스트 트래픽이다. 에이전트 경제는 아직 거리의 소음이 아니라 실험실의 굉음에 가깝다. 그러나 구글, 페이팔, 비자, 마스터카드, 스트라이프, 서클, 코인베이스가 동시에 이 실험실로 뛰어들고 있다. 그 굉음이 언제 거리로 나올지는 다른 문제다. 기술은 늘 S자 곡선을 그린다. 그리고 곡선의 꺾이는 지점은 언제나 나중에야 확인된다.

그 실험실의 주역 중 한 명이 지난 13일 한국을 찾았다. 서클 창업자 제레미 알레어다. 이틀간의 방한 일정 동안 그는 KB·신한·하나금융지주 경영진과 오찬 회동을 했고, 업비트·빗썸·코인원과 각각 파트너십을 맺었다. 기자간담회에서 그가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다. 스테이블코인은 더 이상 크립토의 하위 영역이 아니라 글로벌 결제 인프라라는 것, 그리고 시장은 규제보다 앞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가 한국에서 직접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는 점이다. 대신 그가 제시한 구도는 이렇다. 국내 은행·핀테크·가상자산 기업이 발행 주체가 되고, 서클은 그 아래의 기술 표준을 공급한다. 발행의 주권은 한국에 맡기되, 그 위를 달리는 레일은 자신들이 깔겠다는 뜻이다. 마스터카드가 기존 카드 사업 위에 BVNK의 결제망을 덧입히듯 사들인 것과 닮은 구도다. 빅테크의 경쟁은 서비스가 아니라 그 아래 레일에서 벌어진다. 그리고 그 레일 위를 어떤 화폐가 달릴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국내 결제 지형도 이미 움직이고 있다. 한국은행의 '2025년중 국내 지급결제동향'에 따르면 모바일 기기를 통한 카드 결제 비중은 전체의 54.3%에 이르렀다. 지갑에서 플라스틱 카드를 꺼내는 풍경은 한 세대가 가기 전에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모바일 결제도 결국 카드망 위에 올라탄 결제다. 한국 개인신용카드의 평균 결제 건은 수만원 단위인 반면, 에이전트 경제의 평균 결제 건은 0.31달러, 약 450원 수준이다. 세 자릿수 차이가 나는 두 세계는 같은 레일 위에서 만날 수 없다.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가 아무리 발전해도 건당 450원짜리 기계 간 결제를 카드망에 올리기는 어렵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국내 논의는 아직도 종종 '커피 한 잔'의 자리에 머문다. "현금과 카드로도 충분히 결제되는데 왜 스테이블코인이 필요한가." 그러나 이 질문 자체가 20세기의 질문일 수 있다. 재래시장에서 나물과 생선을 현금으로 사던 시대의 프레임으로 AI 에이전트 시대를 설명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에이전트는 수십~수백 원짜리 API 호출을 초당 수십 번씩 주고받는다.

달러 기축은 이미 현실이다. 다만 지금까지 달러는 주로 국경을 넘을 때 작동했다. 한국인은 원화로 월급을 받고, 원화로 저축하고, 원화로 꽃을 샀다. 에이전트 경제가 이전과 다른 지점은 국내 거래의 모세혈관까지 달러가 침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네이버에서 꽃을 주문하는 일도, 카카오에서 택시를 부르는 일도, 그 저변에서는 에이전트가 달러로 결제하는 구조로 바뀔 수 있다. 우리 국민이 에이전트 경제 시대에 달러를 지갑에 넣고 태어나는 것, 그것이 통화주권 침탈의 실질이다. 외환시장에서 환율을 지키는 문제보다 훨씬 조용하고, 훨씬 근본적인 침식이다.

소비자가 해고되는 시대, 새 소비자는 달러를 들고 나타난다. 포드는 100년 전에 답했다. 소비자가 없으면 생산도 없다는 사실을.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커피 한 잔의 문제가 아니다. 에이전트 경제의 소비자가 어느 나라의 돈을 들고 태어날 것인가의 문제다. 그 지갑이 달러로 채워지기 전에, 원화의 레일이 먼저 깔려야 한다.

김민승 코빗리서치센터장
김민승 코빗리서치센터장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코빗 리서치센터 설립 멤버이자 센터장이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사건과 개념을 쉽게 풀어 알리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전략 기획,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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