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한 규모 '절반의 절반' 수준
천연가스값 하루새 11% 치솟아
러 의존도 낮은 남유럽 반발
‘모스크바는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러시아가 또다시 노골적인 ‘자원 무기화’에 나섰다. 독일에 공급해오던 가스를 평소의 40% 수준으로 줄이더니 이번에 20%로 더 낮췄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전방위적인 제재를 시작하자 맞대응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유럽에선 에너지 공급량 감소가 길어지고 올겨울 본격적인 난방철이 시작되면 불가피하게 다시 러시아에 손을 뻗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 국영기업 가스프롬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자국과 유럽을 잇는 해저 송유관 노르트스트림1의 하루 송출량을 3300만㎥까지 제한한다”고 밝혔다. 전체 공급능력 1억6000만㎥의 20% 수준으로 공급량을 줄이겠다는 의미다. 이 조치는 27일 오전 4시부터 시행된다.
이 같은 소식에 25일(현지시간) 런던ICE거래소에서 유럽 천연가스 가격 기준인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8월물은 전 장보다 11%가량 상승해 ㎿h(메가와트시)당 176유로 선까지 치솟았다.
가스프롬은 “노르트스트림1의 포르토바야 가압 기지에 있는 독일 지멘스제 가스 터빈 엔진 두 개 중 하나가 가동을 멈춰 점검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방의 제재도 직접 언급했다. 가스프롬은 “EU 제재와 관련한 문제들의 해결 여부가 수리를 맡긴 가스 터빈 엔진의 조속한 반환과 다른 터빈 엔진의 긴급한 수리를 위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부품 수리를 핑계로 가스 공급을 중단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달 16일 “서방 제재로 캐나다에 수리를 맡긴 터빈이 반환되지 않고 있다”며 노르트스트림1 가스 공급량을 평소의 40%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러시아의 거듭된 자원 무기화로 EU의 반(反)러시아 연대는 흔들리는 모양새다. EU 집행위는 지난 20일 “내년 봄까지 회원국들이 가스 사용량의 15%를 자발적으로 줄이도록 하고, 에너지 위기가 더 심각해질 경우 모든 회원국에 의무적인 가스 수요 감축을 부과한다”는 내용을 제안했다.
그러자 상대적으로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낮은 남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잇따랐다.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폴란드 등은 “회원국별로 에너지 비축분과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다른 상황에서 동일한 감축 비중을 짊어져야 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주장했다. 이 국가들은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은 독일 산업계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력이 약하거나 국가부채 비율이 높은 국가들은 가스 수요 감축으로 더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통신은 “EU 회원국 외교관들이 15% 감축 계획을 완화하는 수정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가 확보한 수정안 초안에 따르면 의무적 감축 목표에 대해 다양한 면제 조항을 적용하기로 했다. 회원국별로 서로 다른 의무 감축 목표치를 두게 된다는 얘기다.
에너지를 둘러싼 러시아와 유럽 간 기싸움에서 미국은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산 가스 대체재를 찾으면서 미국의 액화천연가스(LNG) 유럽 수출이 대폭 늘어났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이날 “올 상반기 미국의 LNG 수출량이 하루 평균 112억 입방피트(3억1700만㎥)를 기록해 전 세계 최대 LNG 수출국으로 올라섰다”고 밝혔다. 작년 하반기에 비해 12% 증가한 규모다.
미국이 수출한 LNG의 상당량은 유럽으로 유입됐다. EU의 LNG 수입량은 올 상반기에만 63% 늘어나 하루 평균 148억 큐빅피트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47%를 미국이 공급했고 다음은 아프리카 4개국(17%), 카타르(15%), 러시아(14%) 순이었다. 특히 1∼5월 미국 LNG 수출량의 약 71%는 EU와 영국으로 갔을 만큼 유럽의 미국산 LNG 의존도가 높아졌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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