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발 스태그플레이션 시작?" 파월 저격한 전 동료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는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의 발언은 결과적으로 허언이 됐습니다. 공급망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예상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더라도 결국 희대의 사기극을 일으킨 꼴이 됐습니다.
일시적이라는 Fed의 예언은 주어만 바뀌었을 뿐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을 밀어낸 주체는 바로 스태그플레이션입니다. 명시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콕 집어 얘기한 적은 없지만 Fed 인사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압축됩니다.
경기침체는 없지만 경기둔화만 있다고 하거나 침체가 있어도 짧고 약한 침체로 끝날 것이라고 안심 시키지만 침체는 피할 수 없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어쩔 수 없겠지만 미국이라도 운좋게 피했으면 좋겠다'는 게 백악관과 Fed의 솔직한 심정일 겁니다.
Fed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진 에릭 로즌그렌 전 보스턴 연방은행 총재가 '한경 글로벌마켓 컨퍼런스 NYC2022'에서 고백한 데서 진실의 일부분이 드러납니다. "경기침체 없이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없다"와 "실업률이 5%를 넘지 않고 물가상승율을 끌어내릴 수 없다"는 로즌그렌 전 총재의 발언은 전 동료들에게 "진실을 얘기하라"고 압박하는 일침과도 같습니다.
이런 로즌그렌 전 총재의 예언을 뒷받침하는 지표들이 이번 주에 속속 나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확 끌어내릴 예정이고 끈적끈적한 소비자물가지수(CPI) 진면목을 새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판단력이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긴장을 더욱 미궁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푸틴발 인플레'를 넘어 '푸틴발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날 지도 모를 일입니다. 게다가 영국발 위기와 크레디트 스위스 은행의 어려움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보다 경기가 좋지 않은데 미국 못지 않게 기준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스태그플레이션 쪽으로 가리키는 세계 경제 상황을 중심으로 이번주 주요 이슈와 일정을 정리해보겠습니다.
◇WB는 스태그플레이션 공식화 … 다음은 IMF?
그동안 스태그플레이션은 주로 학자나 애널리스트의 입에서만 오르내렸습니다. 지역별로 보면 미국을 제외한 유럽이나 남미, 아시아 지역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월드뱅크(WB)가 국제기구 중 처음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을 거론했습니다. 데이비드 맬패스 WB 총재 입을 통해서입니다. IMF 및 WB 연례총회 주간(10~16일)을 앞두고 군불을 때우는 발언이었습니다.
맬패스 총재는 지난달 28일 스탠포드대 연설에서 "세계 에너지 생산이 러시아로부터 벗어나 다각화하려면 수 년이 걸릴 수 있어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유럽은 침체 가능성이 높아졌고 중국 성장은 급격히 느려졌으며 미국 경제생산은 위축됐다고 했습니다. 결국 주요국가들의 경제가 부진하면 신흥국 경제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번엔 IMF 차례입니다. IMF는 11일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내놓습니다. 이미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예고편을 날렸습니다. 지난 7일 조지타운대 연설에서 내년 세계 성장률 전망치를 더 내리겠다고 했습니다. 올 7월 2.9%로 4월(3.2%)에 비해 0.3%포인트 떨어뜨렸는데 추가로 하향조정하겠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서 2026년까지 세계 생산량이 독일 경제 규모 수준인 4조 달러(5700조원) 이상 감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2일엔 워싱턴 IMF 본부에서 세계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열립니다. 이 자리에서 세계 경제의 현주소와 향후 대응방안 등에 논의할 예정입니다. 로렌스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과 마크 카니 전 영국중앙은행 총재, 데니스 슈미할 우크라이나 총리 등 다양한 인사들이 공식성상에 섭니다.
◇"머리보다 코어를 잡아야 한다"
산유국 기구인 OPEC+의 하루 200만 배럴 감산 결정으로 인플레에 대한 불안감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잡히지 않는 근원 인플레이션의 존재를 다시 점검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CPI가 보여주는 그림은 지난달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13일에 나오는 9월 CPI는 '머리 찔끔 하락, 근원은 질긴 상승'으로 요약될 가능성이 큽니다. 전체 헤드라인 CPI는 9월 8.1% 상승할 것이란 게 시장 예상입니다. 8월 8.3%보다 0.2%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예상보다 높으면 투자자들의 불안심리가 커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역시 근원 CPI입니다. 에너지와 식품가격을 뺀 근원 CPI는 9월에 6.5(블룸버그)~6.6(월스트리트저널)% 상승할 것으로 보는 게 시장 컨센서스입니다. 6.3%였던 8월보다 더 높습니다.
월가 예상치보다 적중률이 높은 클리블랜드 연방은행의 인플레이션 나우 캐스팅 수치는 좀 더 불안합니다. 9월 헤드라인 CPI는 8.2%로 소폭 낮지만 근원 CPI는 6.64%로 월가 예상보다 더 높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물가 정점론'은 또다시 힘을 잃어 인플레에 대한 우려가 다시 커질 공산이 큽니다. 전달 대비 근원 CPI 상승률 전망치도 0.51%로 여전히 높습니다.
미국은 여전히 침체보다 인플레가 우선이라면 유럽은 인플레와 침체의 전조를 경험 중입니다. 1960년대 인플레와 침체를 동시에 겪은 영국은 스태그플레이션의 원조입니다. 11일에 나오는 영국의 8월 국내총생산(GDP)과 12일 발표되는 유럽연합(EU)의 산업생산을 통해 침체 여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한 템포 늦은 한국…환율의 운명은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는 금리인상 속도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입니다. 인플레가 셀수록 금리를 빨리 올리게 되고 침체가 강할수록 금리 인상 속도는 더뎌집니다.
미국은 침체를 아직 걱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7일에 나온 9월 고용보고서를 통해 '노동시장은 탄탄하다'는 게 다시 한 번 입증됐습니다. 실업률이 3.7%에서 3.5%로 떨어진 미스테리는 풀리지 않는 숙제지만 어찌됐든 노동시장은 강력하다는 믿음을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11월 FOMC 때 4연속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은 것이란 전망은 거의 기정사실이 되고 있습니다. 그 전망을 12일 나오는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이 확인시켜줄 지 주목됩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모두 10월 물가 정점론을 공론화하면서 경기침체는 없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과한 용어라고 선을 긋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이번주 워싱턴에서 열리는 IMF 연차총회나 특파원 간담회에서 반복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11일(미국 동부시간 10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선 0.5%포인트 금리를 올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미국보다 25bp 덜 올린다'는 거의 모범답안이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당일엔 원·달러 환율이 안정적 흐름을 보일 수 있지만 CPI가 나오면 또 출렁일 가능성이 큽니다.
급한 불은 껐지만 시장 불안 요소는 여전합니다. 인플레가 잡혀야 끝나는 게임에서 끈적끈적한 근원 인플레의 존재는 건재합니다. 이 와중에 영국 국채 금리는 계속 상승하고 있고 크레디트 스위스발 위기는 다시 반복되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러시아와 북한의 핵도발 가능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침체 없이 인플레를 잡을 수 있다"는 파월 의장의 말과 "침체 없이 인플레를 잡을 수 없다"는 로즌그렌 전 총재의 예언 중 어느 쪽이 맞을까요.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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