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은 기본적으로 끝났다."(Inflation is basically over."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CPI)가 10일(미 동부시간) 예상보다 훨씬 좋게 발표된 뒤 제러미 시걸 와튼스쿨 교수는 CNBC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습니다. 인플레이션이 마침내 식고 있다는 신호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10월 CPI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7.7%…가장 낮은 예상보다 낮았다
헤드라인 수치는 전년 대비 7.7%, 전월 대비 0.4% 증가한 것으로 나왔고,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 물가는 각각 6.3%와 0.3% 상승한 것으로 발표됐습니다. 모든 수치가 예상(헤드라인 7.9%, 0.6% 근원 6.5%, 0.5%)이나 지난 9월(헤드라인 8.2%, 0.4% 근원 6.6%, 0.6%)보다 낮았습니다.
2. 전월 대비 0.3% 상승…금세 3%대 물가?
가장 중요한 게 전월 대비 근원 물가입니다. 0.3% 증가해 월가(0.5% 상승) 예상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연율로 환산하면 연 3.3% 수준입니다. 전월 대비 0.4% 오른 헤드라인 수치도 연율로 바꾸면 연 5.4%입니다. 8~9%에 달하던 상황과 다릅니다.
3. 상품 내리고, 서비스도
세부 내용을 보면 중고차와 의료비, 가구, 가전 등 주택 관련 상품, 의류, 항공운임 등 상당수가 10월에 하락했습니다. 휘발유 가격이 한 달 동안 0.4% 오르면서 상품 가격은 0.5% 올랐지만, 에너지와 식품을 뺀 근원 상품 가격은 0.4% 내렸습니다. 전달에는 중고차 가격은 크게 내렸지만 다른 상품 가격이 오르면서 서 이를 상쇄했는데, 10월엔 다른 상품 물가도 평평해지면서 중고차 값 하락이 상품의 전반적 하락세로 이어졌습니다.
서비스 가격은 0.4% 상승했지만 0.8%나 오른 주거비 탓이 큽니다. 주거비를 빼고 계산하면 서비스 물가도 0.1% 내린 것으로 나옵니다. 게다가 10월 큰 폭 하락한 의료비의 경우 보험사들의 매년 9~10월 의료보험 가격을 재산정하는 데 따른 것으로 그 효과는 향후 11개월 추가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로젠버그 리서치의 데이비드 로젠버그 설립자는 "근원 물가에서 주거비를 제외하면 0.1% 내린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2020년 5월 이후 처음 마이너스다. 이는 인플레이션이 높았던 1970년대에는 없었던 일이다. 서비스 물가도 렌트를 제외하면 전달보다 0.1% 내렸고, 근원 상품 물가는 0.4% 떨어졌다"라고 분석했습니다.
3. 주거비 급등 이어졌지만
주거비는 끈적끈적한 요인입니다. 10월에도 전월 대비 0.8% 올라 지난 두 달간 0.7% 오른 것보다 상승세가 더 거세졌습니다. 그런데 주거비는 현재 경기를 1년가량 후행하는 지표입니다. 최근 미국 주택시장은 급랭하면서 주택가격이나 렌트는 확연히 상승세가 꺾어지고 있습니다. 아카데미증권의 피터 치르 전략가는 주거비는 경기후행 지표로 이미 현실에서는 내리고 있으므로 무시해도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바마본드의 윌 슬러터 채권 매니저는 "시차가 큰 주거비를 빼버리면 다른 분야의 인플레이션은 거의 0에 가깝거나 마이너스"라고 설명했습니다.
찰스 슈왑의 캐시 존스 채권 전략가는 "CPI가 예상보다 낮게 나왔다. 전월 대비 0.3% 증가는 여전히 높지만, 예상보다 훨씬 좋은 것이다. 전반적으로 헤드라인 수치의 지속적 하락과 근원 수치의 완만한 하락이 함께 나타났다. Fed의 긴축 정책으로 경기가 둔화하면서 이런 내림세는 이어질 것 같다. 인플레이션 전망에 대해 신중을 기하는 게 맞겠지만, 미 중앙은행(Fed)은 올해 초부터 긴축하고 있고,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상당한 지연 효과를 고려할 때 인플레이션이 앞으로 더 낮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밝혔습니다. 벤다 리서치의 비제이 파텔 전략가는 "이것은 Fed 전환의 시작점이다. CPI는 급락해서 무시무시하게 보였던 수준 이하로 다시 내려가고 있다. 이건 Fed에게 중요할 것이다. 하나의 물가 데이터가 추세를 만들지는 않겠지만, 세부 내용을 따져보면 물가는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베스포크 인베스트먼트는 "여기서부터 월별 상승률이 0.2% 부근을 유지할 경우 내년 중반까지 전년 대비 CPI는 2%대로 낮아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물가가 치솟을 것이라며 Fed에 비판적 태도를 보여온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도 "CPI 수치는 고무적이다. 그동안 높은 쪽으로 놀랐던 수준 정도로 낮은 쪽으로 놀랄 수치가 나왔다. 한 달 만의 수치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무시할 수 있는 숫자는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수치가 발표된 즉시 주가지수 선물은 폭등하고 금리는 크게 낮아졌습니다. 10년물 금리는 순식간에 20bp 하락해 4%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달러도 2% 이상 급락해 두 달 내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Fed가 공격적 긴축을 거둘 것이란 예상이 크게 강화됐습니다. 시카고상품거래소의 Fed워치 시장에서는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50bp 인상 베팅이 80%를 넘었습니다. 또 최종금리에 대한 예상도 내년 6월 5.2%에 달했던 게 내년 3월 4.8%로 낮아졌습니다. 지난주 4.8%까지 치솟았던 국채 2년물 수익률은 4.3%대로 내려왔습니다.
'Fed의 비공식 대변인'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닉 티미라오스 기자는 "10월 CPI 보고서는 Fed가 다음달 50bp를 인상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썼습니다. 바이탈 날리지는 "이는 CPI 하락의 서막에 불과하다. 미국 경제는 몇 달 전과는 완전히 다른(냉각되는) 상태에 있다. 12월 기준금리 인상 폭은 50bp 이하이며, 25bp도 확실히 가능하다. Fed가 올해 긴축 캠페인을 끝낼 가능성이 매우 크다"라고 말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오늘 CPI 보고서는 Fed가 12월 75bp에서 50bp로 인상 속도를 낮출 것이라는 우리 견해와 일치한다. 우리가 보면 노동 시장이 최종금리를 결정할 핵심 요인으로 남아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연착륙에 대한 기대도 높아졌습니다. 루스벨트 인스티튜트의 마이크 콘첼 거시경제 분석가는 "이제 겨우 한 달이고 전에도 이런 비슷한 수치를 본 적이 있지만, 이 수치는 바로 우리가 보고 싶어 했던 것이다. 상품 및 서비스의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물가 하락이야말로 기다리던 연착륙의 모습"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주택시장을 제외한 고용 등 각종 경제 지표들은 버텨주면서 애틀랜타 연방은행이 집계하는 GDP나우는 4분기 GDP 성장률을 4%로 높여 잡았습니다. 씨티의 이코노믹 서프라이즈 지수도 21.5로 대폭 올라왔습니다. 각종 경제 지표가 예상보다 좋게 나오고 있다는 뜻입니다.
CPI와 함께 발표된 지난주 실업급여 청구 건수는 전주보다 7000건 늘어난 22만5000건으로 집계됐습니다. 낮은 편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낮은 실업급여 청구 건수는 인플레이션이 고집스럽게 높게 유지될 때는 좋은 게 아니지만, 인플레이션이 내려온다면 연착륙 가능성을 높이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낮은 물가→Fed의 후퇴→연착륙에 희망이 커지면서 오늘 주가지수는 지속해서 상승 폭을 키웠습니다. 다우는 3.7%, S&P500 지수는 5.54% 폭등했고 나스닥은 무려 7.35% 올랐습니다. 다우 지수는 2020년 5월(3.85%) 이후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고 S&P500 지수는 2020년 4월(7.03%)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보였습니다. 나스닥은 2020년 3월(8.12%) 이후 가장 크게 올랐습니다. 또 국채 10년물 금리는 오후 5시께 32.2bp 폭락한 3.819%를 기록했습니다. 2년물은 32.7bp 내린 4.324%에 거래됐습니다. 2009년 이후 가장 큰 폭의 하루 하락 폭입니다.
오안다의 에드 모야 분석가는 "CPI 보고서는 Fed의 감속으로 이어져 연착륙에 대한 희망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이런 물가 하향 추세가 유지된다면 미국 주식의 바닥이 제자리에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연착륙 희망이 커지면서 일종의 FOMO(상승장에서 혼자 소외될까 두려워 추격 매수하는 것)가 폭발했고, 숏스퀴즈도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CPI 수치에 연계되어 움직이는 퀀트 펀드들도 급격히 매수 버튼을 누른 것 같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오늘 큰 폭 상승에는 기계적, 기술적 요인들이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CPI 수치를 계기로 S&P500 지수는 어느 정도까지 오를 수 있을까요?
-구겐하임 파트너스의 스콧 마이너드 최고투자책임자
"여전히 금리와 주식이 오를 여지가 있다. 금리 상승 추세가 오늘 깨졌으므로 10년물 금리는 다시 3.5%로 돌아갈 수 있다. 반면 강한 계절성과 긍정적인 중간선거 이후 상승, 기술적 지표는 S&P500 지수가 4100까지 오를 수 있음을 제시한다"
-사토리펀드의 댄 나일스 설립자
"CPI를 보면 적어도 12월 13일 11월 CPI가 나올 때까지 4분기 랠리가 있을 것이란 믿음을 계속 갖게 된다. 그리고 이번 랠리는 잠재적으로 일반적 랠리보다 더 상승할 것 같다. FTX 사태는 하방 위험이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과 같은 상방 위험도 있다. 여전히 2023년에 새로운 저점을 볼 것으로 보지만, 단기에는 상당히 긍정적 관점을 유지한다"
-바이탈 날리지의 애덤 크리사펄리 설립자
"연말 멜트업(폭등)을 위한 요인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투자자 포지션이 이런 상황에 준비가 안 되어 있으므로 더 그렇다. 단기적으로는 3900까지 오르는 게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밸류에이션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뇌는 3900 목표가를 유지하고 규율을 지킬 것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미 국채의 랠리(금리 하락)이 정말로 계속된다면 사람들은 멀티플 18배를 고려할 수도 있다"
CNBC의 밥 피사니 주식 평론가는 "이런 물가 데이터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면 긴축이 더 빨리 완료될 가능성이 커지고 2023년 기업 이익이 많이 줄어들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밸류에이션과 관련, "이번 주 S&P는 2023년 수익의 약 16.2배에 거래됐다. 경기 침체 때 멀티플(12~14배)은 아니지만 최근 기준으로는 여전히 낮다. Fed의 긴축 종말이 눈앞에 있고 경제가 붕괴하지 않는다면 그 배수는 쉽게 더 올라갈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뱅크오브아메리카는 "S&P500 지수 3600에서는 조금 먹고 3300에서 한입 물고 3000이 바닥"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금리가 높은 상황이어서 21세기의 평균 멀티플 19배가 아닌 20세기의 멀티플 15배가 좀 더 신뢰할만하다는 것입니다.
전반적으로는 베어마켓 랠리지만 상승 폭은 클 수 있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역사적으로 나스닥인 6% 이상 오른 적은 과거 20번이 있었습니다. 2020년, 2018년에는 베어마켓의 끝 시점에 발생했지만, 2008년 10월, 2002년 5월, 2001년 4월, 2000년 12월 등 16번은 베어마켓 랠리 때 발생했습니다. 조심스러운 전망도 나옵니다. 씨티는 "약한 CPI 수치가 나왔지만, 이는 서비스 분야에서 나오는 인플레이션 상승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우리는 내년에 Fed의 기준금리가 여전히 5.25~5.5%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오늘 10월 CPI에서 휘발유 가격은 넉 달 만에 다시 올랐습니다. 리처드 번스타인 리서치는 향후 물가에 유가의 상방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12월 러시아 원유에 대한 유럽 등 서방의 금수 조치가 시행되면 유가 상승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미국은 크게 줄어든 전략 비축유를 채워야 하고, 중간선거가 끝났기 때문에 미국 행정부는 유가에 신경을 덜 쓸 것으로 봤습니다.
Fed 스피커들의 발언은 약간씩 엇갈렸습니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총재는 "이제 금리 인상 속도를 단계적으로 낮추는 걸 고려하는 게 적절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로리 로건 댈러스 연은 총재는 10월 CPI 데이터가 "안도감을 주기는 했지만,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75bp 인상 속도를 낮추는 걸 고려해야 한다면서 "속도가 느려지더라도 적절하게 긴축된 조건을 제공하기 위해 정책의 다른 요소를 조정할 수 있고, 조정해야 한다. 우리는 2% 인플레이션 목표에 확고하게 전념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클리블랜드 연은의 로레타 메스터 총재는 "경제는 매우 높고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을 겪어 왔고 지금도 물가 전망이 상향될 위험이 계속되고 있다"라며 "여전히 너무 적게 긴축할 위험을 더 큰 위험으로 보고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고삐가 풀리다 보니, FTX 사태는 잊혀졌습니다. 비트코인이 11% 반등해 17690달러로 회복하는 등 암호화폐 가격은 폭등했습니다. 하지만 경고는 이어졌습니다. JP모건은 암호화폐 시장이 마진콜의 폭포를 직면할 수 있다며 비트코인의 바닥은 1만300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봤습니다.
FTX의 파산 가능성이 다른 암호화폐 거래소까지 무너뜨리는 전염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에버코어ISI는 비트코인이 2019년 고점 이하인 1만3850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금융시장의 스트레스가 높아져 이번 베어마켓 랠리가 종료될 수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에버코어는 "만약 현재보다 50% 낮은 8300달러까지 내려간다면 모든 Fed의 긴축사이클 때마다 발생했던 일종의 금융 쇼크 유형을 촉발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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