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근영의 메타버스와 암호화폐 이야기] FTX 뱅크런, 스프링복과 서킷브레이크
스프링복(Antidorcas marsupialis)은 아프리카 남서부 지역에서 서식하는 중간 크기의 갈색과 흰색 영양-가젤의 일종으로 달리는 속도가 상당히 빨라 시속 88km까지 달릴 수 있고 급하면 4m 높이까지 점프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가끔 이 스프링복은 떼 지어 강이나 절벽에서 뛰어들어 집단으로 사망하는 사고를 연출한다.
아프리카의 과학자들은 이 현상을 밝혀내기 위해 그들의 습성을 연구하여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선천적으로 타고난 왕성한 식욕을 지닌 스프링복은 무리를 지으며 풀을 뜯어 먹는데 가끔 좋은 풀밭이 발견되면 뒤에서 풀을 먹던 녀석이 앞선 녀석보다 많은 풀을 먹기 위해 더 빨리 앞으로 달려 나가게 되고, 앞에 있던 녀석은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보다 더 빨리 앞으로 달려 나가는 현상이 반복 진행되면서,
그렇게 수 백 마리가 앞 다퉈 달리기 시작하면 기본 목적조차 상실한 채 경쟁적으로 무작정 달리기만 하다가
결국 앞에 강이나 절벽이 나타나도 뒤따라오는 집단에 밀리기도 하고 습관적으로 앞의 무리를 제치고 무작정 뛰어들어 떼죽음을 당하게 된다고 한다.
학자들은 이렇게 맹목적으로 이유도 모른 체 앞 사람만 따라가기에만 급급한 현상을 "스프링복 현상"이라 칭한다.
이러한 맹목적으로 따라 뛰다가 대규모 참사가 나타나는 현상은 스프링복 뿐 아니라 인간 세계에서도 자주 발견되는데 금번 FTX 거래소의 코인런도 비슷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FTX 사건의 발단은 미국 암호화폐 관련 뉴스채널 코인데스크가 기사화한 FTX 계열사 알라메다 리서치의 재무제표에서 FTX가 자체 발행한 코인(FTT)을 담보로 대규모 대출을 받아 몸집을 키워온 정황이 발견되었다며 FTX의 재무 건전성에 의문을 표하는 기사를 게재한 것이 시발점이 되었으며
여기에 더해 지난 11월 7일 바이낸스의 CEO 자오창펑이 보유 중이던 약 5억 달러 상당의 FTX 자체 발행 토큰 FTT를 모두 매각하겠다는 트윗을 게시하면서 FTT 가격이 하룻밤 사이 80% 가까이 폭락하면서 대규모 코인런이 시작되었다.
사건이 벌어진 직후 많은 사람들이 한때 이것을 바이낸스와 FTX간의 전쟁이라고 주장하였으나 다음날 새벽 자오창펑이 투명성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의 포지션 변동을 고지했을 뿐이라고 해명 트윗을 올리며 잠시 조정을 받았으나
루나에 크게 놀란 투자자들 일부가 FTX 역시 믿을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하여 코인을 내던지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는 뱅크런으로 발전하여 암호화폐 출범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파산사태로 확대 되었다.
이로 인해 비트코인을 비롯한 대부분 코인 가격의 동반 폭락이 초래되면서 암호화폐 시장은 루나 사태에 이어 다시 한 번 암흑기를 맞이하고 있다.
인류 역사에 나타났던 모든 투기와 버블의 탄생과 소멸과정을 돌아보면
일반 투자자 대부분은 스프링복처럼 앞에 있는 더 좋은 풀을 차지하기 위하여 (더 좋아 보이는 투자 상품을 먼저 차지하기 위하여) 무작정 앞으로 치고 나갔다가 절벽(버블, 위기)을 발견하지 못하고 집단 사망으로 이른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렇게 투자의 세계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방향을 결정할 때, 다수의 군중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따라가는 것은 선택이 복잡하지도 않고 외롭지 않아 마음은 편할지 몰라도 결코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
비교하기는 적당하지 않지만 이번 이태원 참사 역시 할로윈 데이에 많은 젊은이가 모여든다는 이유 하나로 좁은 공간에 10만 명 넘는 젊은이들이 대거 집결한 결과가 가져온 참사다.
거기에 그동안 가끔 수십만 명 넘는 정치집회 및 경기장에서도 사고가 없었다는 안이한 판단
또 과거 더 많은 군중이 모였어도 질서유지로 사고 경험이 없다보니 괜찮겠지 하는 관계 당국의 무심함이 더해진 인재라고 본다.
같은 날 일본의 할로윈은 경찰의 사전 안내와 적극적인 통제로 사고 없이 진행되었는데,
대규모 참사를 겪은 우리나라와 일본의 사례를 투자의 세계와 비교해 보면 암호화폐 시장은 우리나라의 경우로 볼 수 있고 기존 금융시장의 파생상품은 일본의 사례로 비교할 수 있다.
따라서 아직 수많은 투자자가 몸을 담고 있고 미래 금융시장인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당국의 조속한 사고 예방 체계 구축과 보다 적극적인 참여로 스프링복 현상의 차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필자는 암호화폐 시장에 진출한 이래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이외의 코인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아직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세계 각국 금융 당국의 관리 제도 미비 및 세계적으로 통일된 관리 체계조차 확립되지 않은 상황이기에 이번 FTX 사태와 비슷한 그리고 또 다른 형태의 리스크가 남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FTX 사태로 암호화폐 시장이 지닌 대부분의 악재가 모두 드러난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암호화폐 시장이 자리 잡는데는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울러 필자는 이번 FTX 사태를 계기로 세계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간 상호 협력하여 서킷 브레이크 제도 도입을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서킷 브레이커(Circuit Breaker)란 주가가 일정폭 이상 급락할 경우 주식 거래를 일시 정지시켜 시장을 진정시키고 숨을 돌리게 하는 제도다.
원래 서킷브레이커는 모터 등 전기 장치에 전기가 과도하게 흘러 온도가 올라가면 자동으로 회로를 끊어 화재나 손상을 방지하는 전력 차단기의 일종으로 흔히 얘기하는 '두꺼비집'이다.
서킷브레이커는 미국 최악의 주가 대폭락 사태인 1987년 10월 '블랙 먼데이' 이후 주가 급변을 인위적으로 막아 보자는 취지에서 뉴욕증권거래소(NYSE)가 처음 도입한 제도로
그로부터 2년 뒤인 1989년 10월 뉴욕 증시가 다시 폭락했을 때 이 제도의 효과가 발휘되면서 각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다소 늦은 1998년 12월7일 국내주식 가격제한폭이 상하 15%로 확대되면서 거래소 시장(현 유가증권 시장)에서 먼저 서킷브레이커 제도가 도입됐다.
코스닥 시장은 원래 이 제도를 적용하지 않았으나 2001년 9·11테러 이후 예기치 못한 주가 대폭락을 경험하며 그 필요성이 제기돼 그 해 10월 도입됐다.
이렇게 서킷 브레이크 제도는 스프링복이 무작정 절벽을 향해 뛰어갈 때, 절벽 앞에서 누군가 괭가리라도 치며 소리라도 질러대는 제도로
선두의 스프링복이 방향을 바꾸게 만들어 대규모 참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며, 투자자들 역시 잠시 숨을 고르며 지금 투매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를 생각하게 하고 상호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을 만들 수 있고,
이 짧은 시간동안 해당 거래소나 암호화폐의 운영자들도 대책을 마련하여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금융시장의 각종 규제와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수많은 투자자들의 손실과 고통으로 그 바닥을 채워온 눈물겨운 역사의 산물이다.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신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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