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가 오랜만에 하락했습니다. 20일(미 동부시간) 오후 4시께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8.7bp 내린 2.854% 수준에 거래됐습니다. 한때 2.832%까지 떨어졌습니다. 30년물은 9.7bp 하락해 2.901%를 기록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전날 밤 국채 매수를 권하는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BofA의 애널리스트들은 "지금의 10년물 금리 수준은 매수하기에 매력적"이라고 밝혔습니다. BofA는 "미국의 소비자물가(CPI)가 8.5%에 달하고 있지만, 시장이 인플레이션 위험을 과도하게 강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예측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은 이번 분기에 정점을 찍고 2023년까지 꾸준히 하락할 것이다. 이것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 수위를 낮추고 금리를 하락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설명했습니다. BofA는 연 2.83% 수준까지는 매수하고, 2.25%를 목표로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면서 혹시 3.10%까지 치솟는다면 손절매하라고 덧붙였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노무라 자산운용의 디키 호지스 펀드매니저도 미국 독일 등 채권 금리 하락에 베팅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이제 대서양 양쪽(미국, 유럽)의 금리 인상 기대가 과도해지기 시작하는 지점에 있다고 믿는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미국에 대해서는 미 중앙은행(Fed)가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한 공격적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에 대해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유럽 경제가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라며 "이런 경제 상황이 유럽중앙은행(ECB)이 시장에서 기대하는 수준의 인상을 달성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어제 전해드렸듯이 모건스탠리 자산운용의 짐 캐론 포트폴리오 매니저도 "연 2.75~3%는 10년물 상승세가 최소한 일시적으로 중단될 필요가 있는 수준"이라며 "채권을 공매도했던 투자자는 약간 차익 실현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3% 이상으로 상승할 수 있지만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장기 금리가 (적어도 단기적으로) 정점을 쳤다는 주장들이 쏟아지자 채권 금리가 하락한 것입니다. 이에 투자자들도 채권 매수에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날 오후 1시 실시된 미 재무부의 20년물 국채 입찰(160억 달러)에서는 낙찰 금리가 발행 당시 시장 금리보다 3bp나 낮은 3.095%로 결정됐습니다. 20년물은 원래 인기가 높지 않지만, 응찰률이 2.80배 수준으로 뛰었고, 해외 수요를 나타내는 간접수요가 75.9%까지 치솟았습니다. 지난 6번 입찰 평균인 63.9%를 훨씬 웃돌았습니다. 입찰 소식이 알려진 직후 금리는 순간 급락하기도 했습니다.
금리가 상승세를 멈추자 함께 치솟기만 하던 달러화도 하락했습니다. ICE 달러인덱스는 전날보다 0.6% 떨어진 100.335를 기록했습니다.
금리가 (잠시일 수도 있지만) 꺾였다는 건 기술주, 나스닥엔 희소식입니다. 하지만 나스닥은 종일 큰 폭의 내림세를 보였습니다. 다우는 0.71% 상승했지만, 나스닥은 1.22%나 떨어졌고 S&P500 지수는 두 지수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결국 0.06% 약보합세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나스닥이 내린 건 넷플릭스 탓이었습니다. 넷플릭스 주가는 이날 35.12%(122.42달러) 급락한 226.19달러로 마감됐습니다. 개장하자마자 27% 떨어졌고, 37%까지 폭락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하루 시가총액 560억 달러가 증발했습니다. 종가 226.19달러는 작년 11월 기록한 700.99달러에 비해 67.6% 급락한 것입니다. 한때 S&P500 기업 중 시총 상위 10위 안에 들던 넷플릭스는 87위까지 추락했습니다.
1분기 유료 구독자가 20만 명이나 줄었고, 2분기에도 200만 명이 추가 감소할 것이라는 가이던스를 내놓은 탓입니다. 이처럼 가입자가 감소하는 게 성장주에 치명적인 시장 포화, 그리고 경쟁 격화 등이라고 밝힌 것도 부정적이었습니다. 가격을 올리자 아시아를 제외한 전 세계에서 가입자가 이탈한 것도 '가격 결정력이 없다'라는 징후로 간주됐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넷플릭스는 더는 성장주가 아니다. 그런데 주가수익률(P/E)이 30배가 넘는다. 가치주라면 P/E는 10~15배 수준으로 낮아지는 게 맞다"라고 말했습니다. 전날 30배가 넘었던 넷플릭스의 P/E는 이날 20배 정도로 내려왔습니다.
월가에서는 줄줄이 목표가와 투자등급을 낮췄습니다.
▶JP모건(매수→중립, 목표가 605달러→300달러)
"더 큰 문제는 계정 공유와 증가한 경쟁, 상대적으로 높은 가계 침투율에 대한 경영진의 인정이었다. 성장 계획에 대한 단기 가시성은 제한적이다."
▶BofA(매수→매도, 605달러→300달러)
"월가는 이제 지난 분기의 낮은 가이던스가 일회적 일탈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투자자들이 넷플릭스가 다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UBS(매수→중립, 575달러→355달러)
"넷플릭스를 장기적 승자로 보고 있지만, 경쟁 심화, 거시적 역풍, 시장 포화로 인해 구독자 성장은 계속 부담이 될 것이다."
리드 헤이스팅스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콘퍼런스콜에서 광고가 포함된 저가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크레딧스위스는 "더 넓은 시장에서 더 낮은 진입을 허용한다는 점에서 넷플릭스의 광고 버전을 꽤 좋게 보고 있지만, 오늘 들어갈 이유는 거의 없다고 본다. 광고 버전 출시까지는 1~2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더 큰 문제는 넷플릭스가 팬데믹 기간에 크게 오른 기술주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겁니다. 넷플릭스의 나스닥 지수 내 비중은 1.2%(19일 기준)에 불과했지만 이날 나스닥이 크게 떨어진 이유입니다.
우선 다른 스트리밍 등 미디어 주식이 급락했습니다. 디즈니와 로쿠, 워너브러너스 디스커버리 등은 각각 6% 이상 떨어졌고 파라마운트는 9% 내렸습니다. 디즈니의 경우 이날 플로리다주 상원이 세제 혜택을 박탈하는 법안을 의결한 것도 부정적이었습니다. ‘게이 언급 금지(Don’t Say Gay)’법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가 디즈니월드가 누려온 세제 혜택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겁니다.
쇼피파이(-13.31%) 블록(-8.84%) 텔라닥(-4.53%) 등 아크 관련 주도 급락했고 이들 주식을 대량 보유한 아크이노베이션펀드는 5.93% 하락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팬데믹 기간 재택근무와 봉쇄 등으로 수혜를 입은 주식입니다. 넷플릭스처럼요.
빅테크도 하락했습니다. 빅테크 중 팬데믹 수혜주로 꼽혀온 메타는 7.77%나 급락했고 아마존 2.6%, 알파벳 1.75%, 엔비디아 3.23% 떨어졌습니다. 이날 장 마감 뒤 1분기 실적을 공개할 예정이던 테슬라도 정규 장에서 4.96% 급락했습니다. 혹시 나쁜 실적이 나올까 봐 투자자들이 몸을 사린 것이죠. 전날 장 마감 뒤 예정됐던 넷플릭스의 실적 발표를 앞두고 성급하게 장 중 매수했던 투자자들이 호되게 당한 걸 목격한 탓입니다. 넷플릭스는 전날 시장에서 3% 올랐었습니다.
조금 전 실적을 공개한 테슬라는 넷플릭스와는 달랐습니다. 1분기 매출은 작년 동기보다 81% 증가한 187억6000만 달러에 달했고 월가 예상 178억 달러도 크게 상회했습니다. 주당순이익(EPS)도 3.22달러를 기록해 예상 2.26달러를 대폭 웃돌았습니다. 순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7배 넘게 늘었습니다. 매출총마진은 32.9%에 달했고, 1분기에 잉여현금흐름이 22억 달러나 생겨났습니다.
웨드부시의 댄 아이브스 기술담당 애널리스트는 "이번 기술주의 어닝시즌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라면서 "기업들이 디지털화에 여전히 많은 돈을 쓰고 있으므로 클라우드, 사이버보안 등 관련 기술주들은 빛날 것이지만, 재택수혜주였던 넷플릭스와 줌 등은 사그라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지금 증시에 뚜렷한 주도주가 없다는 것입니다. 네드데이비스의 에드 클리솔드 주식 전략가는 "지난 3월 8일 랠리가 시작된 뒤 시장을 이끄는 주도주가 확실하지 않다"라며 "증시는 결정적인 리더십 없이는 일정한 거래 범위(4155~4726)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고평가 기술주와 소형주들은 잠시 반짝하는 데 그쳤고, 금융 소재 등 경기민감주는 원자재 급등세 속에 빛을 잃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부에서는 넷플릭스 주식을 저가 매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이날 매수 주문 숫자는 매도 주문 수의 3배에 달했습니다. 즉 대규모 매도 주문이 나왔고, 소액 투자자들이 이를 매수했다는 얘기입니다. 조시 브라운 리츠 홀트 자산운용 최고경영자(CEO)는 "넷플릭스의 역사를 보면 이렇게 폭락한 적이 대여섯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리드 헤이스팅스 CEO는 길을 찾아냈다. 결국은 언제나 (폭락은) 매수기회였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우의 상승은 IBM(+7.10%), P&G(+2.52%) 쌍두마차가 이끌었습니다. 넷플릭스와 달리 추정치를 크게 상회한 1분기 실적을 공개한 덕분입니다. IBM은 클라우드 서비스에 기반한 매출이 크게 성장했고, P&G는 "제품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유지됐다"라며 가이던스를 높였습니다. IBM의 선전은 시스코, 오라클, HP(HPQ) 등 오래된 기술주의 동반 상승도 끌어냈습니다. SYZ프라이빗뱅킹의 루 필립 투자 책임자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우리는 인플레이션이 더 높은 시기에 살고 있으며 이는 일부 기업에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며 "우리가 주시하는 건 가격 결정력이며, 이게 없는 기업은 수익성 압박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후 2시 발표된 Fed의 베이지북에서는 이런 인플레이션 문제가 여전하다는 걸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미국 경제가 순항하고 있다고 적시했습니다. Fed는 "미국 경제는 2월 중순 이후 보통 속도(moderate pace)로 성장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전달 '보통에서 완만한 속도'(modest to moderate)라고 표현한 것보다 더 나은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지정학적 변화와 물가 상승으로 인한 불확실성으로 미래 성장 전망은 흐려졌다고 진단했습니다. "기업들이 빠르게 증가하는 투입 비용을 계속 고객에게 전가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은 지난 보고서 이후 계속 강했다. 대부분 지역의 기업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앞으로 몇 달 동안 계속될 것으로 예상했다”라고 적은 겁니다. 치솟는 가격으로 인한 수요 파괴("일부 지역의 기업들은 가격 상승에 따른 부정적인 판매 영향을 언급했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일부에선 강력한 임금 상승 속도가 둔화하기 시작했다는 초기 징후를 보고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경제는 괜찮습니다. 경기 침체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걱정 수준입니다. 모기지 금리가 5%대로 급등하자 이날 발표된 3월 기존주택 판매는 전월보다 2.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두 달째 감소세이지만 전월(7.2% 감소)이나 월가 예상(4.5% 감소)보다 나았습니다. 특히 매매 중간가격이 최고 기록인 37만5300달러에 달했습니다. 이는 주택 재고가 2개월 치에 불과하고 수요는 꾸준하기 때문입니다.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의 로렌스 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주택 공급이 빡빡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주택 가격이 상승했다"라면서 "최초 주택구매자들은 현 수준의 금리에라도 주택을 구매하려고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파이퍼샌들러의 마이클 켄트로위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더 높은 금리는 주택 시장을 둔화시키겠지만 기록적인 재고 부족은 주택 가격의 높은 바닥을 유지시킬 것이다. 주택 시장이 과거 사이클처럼 급작스럽게 느려질 것으로 기대하지 말라"라고 말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전날 밤 국채 매수를 권하는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BofA의 애널리스트들은 "지금의 10년물 금리 수준은 매수하기에 매력적"이라고 밝혔습니다. BofA는 "미국의 소비자물가(CPI)가 8.5%에 달하고 있지만, 시장이 인플레이션 위험을 과도하게 강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예측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은 이번 분기에 정점을 찍고 2023년까지 꾸준히 하락할 것이다. 이것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 수위를 낮추고 금리를 하락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설명했습니다. BofA는 연 2.83% 수준까지는 매수하고, 2.25%를 목표로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면서 혹시 3.10%까지 치솟는다면 손절매하라고 덧붙였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노무라 자산운용의 디키 호지스 펀드매니저도 미국 독일 등 채권 금리 하락에 베팅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이제 대서양 양쪽(미국, 유럽)의 금리 인상 기대가 과도해지기 시작하는 지점에 있다고 믿는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미국에 대해서는 미 중앙은행(Fed)가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한 공격적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에 대해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유럽 경제가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라며 "이런 경제 상황이 유럽중앙은행(ECB)이 시장에서 기대하는 수준의 인상을 달성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어제 전해드렸듯이 모건스탠리 자산운용의 짐 캐론 포트폴리오 매니저도 "연 2.75~3%는 10년물 상승세가 최소한 일시적으로 중단될 필요가 있는 수준"이라며 "채권을 공매도했던 투자자는 약간 차익 실현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3% 이상으로 상승할 수 있지만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장기 금리가 (적어도 단기적으로) 정점을 쳤다는 주장들이 쏟아지자 채권 금리가 하락한 것입니다. 이에 투자자들도 채권 매수에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날 오후 1시 실시된 미 재무부의 20년물 국채 입찰(160억 달러)에서는 낙찰 금리가 발행 당시 시장 금리보다 3bp나 낮은 3.095%로 결정됐습니다. 20년물은 원래 인기가 높지 않지만, 응찰률이 2.80배 수준으로 뛰었고, 해외 수요를 나타내는 간접수요가 75.9%까지 치솟았습니다. 지난 6번 입찰 평균인 63.9%를 훨씬 웃돌았습니다. 입찰 소식이 알려진 직후 금리는 순간 급락하기도 했습니다.
금리가 상승세를 멈추자 함께 치솟기만 하던 달러화도 하락했습니다. ICE 달러인덱스는 전날보다 0.6% 떨어진 100.335를 기록했습니다.
금리가 (잠시일 수도 있지만) 꺾였다는 건 기술주, 나스닥엔 희소식입니다. 하지만 나스닥은 종일 큰 폭의 내림세를 보였습니다. 다우는 0.71% 상승했지만, 나스닥은 1.22%나 떨어졌고 S&P500 지수는 두 지수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결국 0.06% 약보합세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나스닥이 내린 건 넷플릭스 탓이었습니다. 넷플릭스 주가는 이날 35.12%(122.42달러) 급락한 226.19달러로 마감됐습니다. 개장하자마자 27% 떨어졌고, 37%까지 폭락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하루 시가총액 560억 달러가 증발했습니다. 종가 226.19달러는 작년 11월 기록한 700.99달러에 비해 67.6% 급락한 것입니다. 한때 S&P500 기업 중 시총 상위 10위 안에 들던 넷플릭스는 87위까지 추락했습니다.
1분기 유료 구독자가 20만 명이나 줄었고, 2분기에도 200만 명이 추가 감소할 것이라는 가이던스를 내놓은 탓입니다. 이처럼 가입자가 감소하는 게 성장주에 치명적인 시장 포화, 그리고 경쟁 격화 등이라고 밝힌 것도 부정적이었습니다. 가격을 올리자 아시아를 제외한 전 세계에서 가입자가 이탈한 것도 '가격 결정력이 없다'라는 징후로 간주됐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넷플릭스는 더는 성장주가 아니다. 그런데 주가수익률(P/E)이 30배가 넘는다. 가치주라면 P/E는 10~15배 수준으로 낮아지는 게 맞다"라고 말했습니다. 전날 30배가 넘었던 넷플릭스의 P/E는 이날 20배 정도로 내려왔습니다.
월가에서는 줄줄이 목표가와 투자등급을 낮췄습니다.
▶JP모건(매수→중립, 목표가 605달러→300달러)
"더 큰 문제는 계정 공유와 증가한 경쟁, 상대적으로 높은 가계 침투율에 대한 경영진의 인정이었다. 성장 계획에 대한 단기 가시성은 제한적이다."
▶BofA(매수→매도, 605달러→300달러)
"월가는 이제 지난 분기의 낮은 가이던스가 일회적 일탈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투자자들이 넷플릭스가 다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UBS(매수→중립, 575달러→355달러)
"넷플릭스를 장기적 승자로 보고 있지만, 경쟁 심화, 거시적 역풍, 시장 포화로 인해 구독자 성장은 계속 부담이 될 것이다."
리드 헤이스팅스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콘퍼런스콜에서 광고가 포함된 저가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크레딧스위스는 "더 넓은 시장에서 더 낮은 진입을 허용한다는 점에서 넷플릭스의 광고 버전을 꽤 좋게 보고 있지만, 오늘 들어갈 이유는 거의 없다고 본다. 광고 버전 출시까지는 1~2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더 큰 문제는 넷플릭스가 팬데믹 기간에 크게 오른 기술주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겁니다. 넷플릭스의 나스닥 지수 내 비중은 1.2%(19일 기준)에 불과했지만 이날 나스닥이 크게 떨어진 이유입니다.
우선 다른 스트리밍 등 미디어 주식이 급락했습니다. 디즈니와 로쿠, 워너브러너스 디스커버리 등은 각각 6% 이상 떨어졌고 파라마운트는 9% 내렸습니다. 디즈니의 경우 이날 플로리다주 상원이 세제 혜택을 박탈하는 법안을 의결한 것도 부정적이었습니다. ‘게이 언급 금지(Don’t Say Gay)’법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가 디즈니월드가 누려온 세제 혜택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겁니다.
쇼피파이(-13.31%) 블록(-8.84%) 텔라닥(-4.53%) 등 아크 관련 주도 급락했고 이들 주식을 대량 보유한 아크이노베이션펀드는 5.93% 하락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팬데믹 기간 재택근무와 봉쇄 등으로 수혜를 입은 주식입니다. 넷플릭스처럼요.
빅테크도 하락했습니다. 빅테크 중 팬데믹 수혜주로 꼽혀온 메타는 7.77%나 급락했고 아마존 2.6%, 알파벳 1.75%, 엔비디아 3.23% 떨어졌습니다. 이날 장 마감 뒤 1분기 실적을 공개할 예정이던 테슬라도 정규 장에서 4.96% 급락했습니다. 혹시 나쁜 실적이 나올까 봐 투자자들이 몸을 사린 것이죠. 전날 장 마감 뒤 예정됐던 넷플릭스의 실적 발표를 앞두고 성급하게 장 중 매수했던 투자자들이 호되게 당한 걸 목격한 탓입니다. 넷플릭스는 전날 시장에서 3% 올랐었습니다.
조금 전 실적을 공개한 테슬라는 넷플릭스와는 달랐습니다. 1분기 매출은 작년 동기보다 81% 증가한 187억6000만 달러에 달했고 월가 예상 178억 달러도 크게 상회했습니다. 주당순이익(EPS)도 3.22달러를 기록해 예상 2.26달러를 대폭 웃돌았습니다. 순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7배 넘게 늘었습니다. 매출총마진은 32.9%에 달했고, 1분기에 잉여현금흐름이 22억 달러나 생겨났습니다.
웨드부시의 댄 아이브스 기술담당 애널리스트는 "이번 기술주의 어닝시즌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라면서 "기업들이 디지털화에 여전히 많은 돈을 쓰고 있으므로 클라우드, 사이버보안 등 관련 기술주들은 빛날 것이지만, 재택수혜주였던 넷플릭스와 줌 등은 사그라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지금 증시에 뚜렷한 주도주가 없다는 것입니다. 네드데이비스의 에드 클리솔드 주식 전략가는 "지난 3월 8일 랠리가 시작된 뒤 시장을 이끄는 주도주가 확실하지 않다"라며 "증시는 결정적인 리더십 없이는 일정한 거래 범위(4155~4726)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고평가 기술주와 소형주들은 잠시 반짝하는 데 그쳤고, 금융 소재 등 경기민감주는 원자재 급등세 속에 빛을 잃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부에서는 넷플릭스 주식을 저가 매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이날 매수 주문 숫자는 매도 주문 수의 3배에 달했습니다. 즉 대규모 매도 주문이 나왔고, 소액 투자자들이 이를 매수했다는 얘기입니다. 조시 브라운 리츠 홀트 자산운용 최고경영자(CEO)는 "넷플릭스의 역사를 보면 이렇게 폭락한 적이 대여섯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리드 헤이스팅스 CEO는 길을 찾아냈다. 결국은 언제나 (폭락은) 매수기회였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우의 상승은 IBM(+7.10%), P&G(+2.52%) 쌍두마차가 이끌었습니다. 넷플릭스와 달리 추정치를 크게 상회한 1분기 실적을 공개한 덕분입니다. IBM은 클라우드 서비스에 기반한 매출이 크게 성장했고, P&G는 "제품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유지됐다"라며 가이던스를 높였습니다. IBM의 선전은 시스코, 오라클, HP(HPQ) 등 오래된 기술주의 동반 상승도 끌어냈습니다. SYZ프라이빗뱅킹의 루 필립 투자 책임자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우리는 인플레이션이 더 높은 시기에 살고 있으며 이는 일부 기업에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며 "우리가 주시하는 건 가격 결정력이며, 이게 없는 기업은 수익성 압박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후 2시 발표된 Fed의 베이지북에서는 이런 인플레이션 문제가 여전하다는 걸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미국 경제가 순항하고 있다고 적시했습니다. Fed는 "미국 경제는 2월 중순 이후 보통 속도(moderate pace)로 성장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전달 '보통에서 완만한 속도'(modest to moderate)라고 표현한 것보다 더 나은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지정학적 변화와 물가 상승으로 인한 불확실성으로 미래 성장 전망은 흐려졌다고 진단했습니다. "기업들이 빠르게 증가하는 투입 비용을 계속 고객에게 전가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은 지난 보고서 이후 계속 강했다. 대부분 지역의 기업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앞으로 몇 달 동안 계속될 것으로 예상했다”라고 적은 겁니다. 치솟는 가격으로 인한 수요 파괴("일부 지역의 기업들은 가격 상승에 따른 부정적인 판매 영향을 언급했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일부에선 강력한 임금 상승 속도가 둔화하기 시작했다는 초기 징후를 보고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경제는 괜찮습니다. 경기 침체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걱정 수준입니다. 모기지 금리가 5%대로 급등하자 이날 발표된 3월 기존주택 판매는 전월보다 2.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두 달째 감소세이지만 전월(7.2% 감소)이나 월가 예상(4.5% 감소)보다 나았습니다. 특히 매매 중간가격이 최고 기록인 37만5300달러에 달했습니다. 이는 주택 재고가 2개월 치에 불과하고 수요는 꾸준하기 때문입니다.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의 로렌스 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주택 공급이 빡빡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주택 가격이 상승했다"라면서 "최초 주택구매자들은 현 수준의 금리에라도 주택을 구매하려고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파이퍼샌들러의 마이클 켄트로위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더 높은 금리는 주택 시장을 둔화시키겠지만 기록적인 재고 부족은 주택 가격의 높은 바닥을 유지시킬 것이다. 주택 시장이 과거 사이클처럼 급작스럽게 느려질 것으로 기대하지 말라"라고 말했습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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